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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다. 모두가 제각기 혼자이고 모두가 제각기 외로운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다. 직접 닿아있지는 않지만 중력과 인력으로 서로 이어져 있는 별들처럼.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다. 누구도 고립되어 있지 않다. 어떻게든 누구와든 연결되어 있다.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이 갔던 곳, 들었던 음악, 만졌던 물건 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주인공과 정민은 어린 시절 비슷한 시기에 무주에 머물렀고, 정민의 삼촌이 여러 사건에 연루된 끝에 일본 밀항을 결정했을 때 이길용의 할아버지와 만났으며, 강시우와 레이는 불이농촌을 공통의 화제로 인연이 닿았으며, 주인공과 강시우는 이야기의 시작이랄 수 있는 한 장의 입체사진으로 연결되어 있다.

폭력적인 시대 속에서 그들은 유대로, 우정으로, 사랑으로, 인연으로 시대를 살아냈다. 이 이어짐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시대를 견뎌내지 못했다.

그 별자리들은 내게, 이 세상이 신비로운 까닭은 제아무리 삼등급의 별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한, 사자도, 처녀도, 목동도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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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어져 있을 뿐이다.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을 받고 나에게 영향을 주지만, 그들이 나의 삶을 결정할 수 없고 나로서 살아줄 수도 없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리 해서는 안 된다. 타인에게 내 삶을 맡겨서는 안 된다. 타인이 내 삶을 결정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의지하되 사랑하되 자신의 삶은 자신이 살아야 한다.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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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데 참 오래 걸렸다. 분량도 많고 편안히 읽히는 책도 아니다. 어렵고 힘들다. 가방에 오랫동안 넣어놓고 다녔더니 테두리가 헤지고 더러워졌다. 일 때문에 혹은 또 다른 이유 때문에 며칠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중간에 읽기를 멈추고 다른 책을 읽기도 했다. 느릿느릿,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았지만 결국 얼추 이삼 주에 걸쳐 어떻게든 다 읽었다. 심지어는 그렇게 고생해서 읽었음에도, 다 읽은 뒤 한 번 더 읽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럴만한 매력이 있다. 묘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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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것이 책의 줄거리나 이야기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 여태까지 감상문을 쓸 때는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하나는 앞에서 간략하게 줄거리를 한 번 이야기하고 뒤에서는 느낀 점들을 풀어놓는 것. 다른 하나는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에 대해 길게 말하면서 감상을 중간중간 섞는 것.

그런데 이 책은,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은 것도 한몫하겠지만, 별달리 줄거리를 축약하고 싶지도 않고 이야기의 특정 부분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 것이 없다. 다 읽고 난 직후에도 별다른 감정이 남지 않았고, 등장인물들의 후일담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책이 일관되게 이야기한 사실만이 가슴 한구석에 조용히,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이야기는 일관되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따라서 나는 너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고립되지 않았다는 것, 그럼에도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에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

세계는 기묘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돼 있었다. p.296
그의 삶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불행으로 가득했고, 그 대부분의 불행은 폭력적인 체제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그가 그 무엇에도 훼손되지 않는 행복을 발견하게 된 것은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것은 정민의 삼촌이, 어쩌면 나의 할아버지가 한평생 꿈꿨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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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글자들에 압도당했다. 글자가 너무 많고 빼곡했다. 약 400페이지. 그 속에서 문장들은 문단의 나눔도 별로 없이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야기 자체도 고의로 내용을 누락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맥락에서 앞뒤의 단서를 이야기하는 등, 친절하지 않다. 내가 책을 읽는 느낌이 아니라, 책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느낌이다.

두 번째로 읽을 때는 편안했다. 처음에는 혼란을 가중시켰던 말들이 이제는 이해를 돕고 깊이를 더하는 말들로 변해있었다. 영화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다시 볼 때 복선이나 상징들이 더 잘 보이는 것과 같다. 비로소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제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었다.

한 번만 읽겠다면, 추천하지 않겠다. 실제로 한 번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을 '추천하지는 않는 책'으로 분류했었다. 한 번 더 읽고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을 400페이지의 책이 아니라 800페이지의 책으로 가정한다면,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