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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진정한 자신을 찾는 소년의 이야기다.

소년은, 에밀 싱클레어는 나쁜 길에 빠진 적도 있고 방탕한 생활에 허우적댄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찾고자 했다. 세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주변의 시선이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자신이 되고자 했다.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대로 저절로 우러나오는 대로 살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침잠하고 꿈꿨다.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렵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구도자로서, 탐구자로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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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에게는 자신을 아는 것, 자기 자신에게 가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떠한 의무도 없다고 역설한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주변에 휩쓸리는 것, 남이 말하는 대로 남의 생각대로 사는 것을 경멸한다. 남과 비교하고 보편적인 도덕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방식을 부정한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진정한 소명이란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그것뿐이다. p.154

선한 세계 혹은 보편적으로 옳은 것, 그것들만을 긍정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잘못되었다 말하며 모든 것을 동등하게 대하고 모든 것에 똑같이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떠한 가치에 차등을 매기지 않고,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차등을 두는 순간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나뉘고, 옳고 그름이 나뉘는 순간 그것은 지독한 안개처럼 내 시야를 방해하고 진정 원하는 것은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난 사람들이 야훼 하느님을 존중하는 데는 반대하지 않아. 전혀 안 하지. 하지만 난 우리가 모든 걸 존중하고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반으로 나눈 다음 공식적으로 인정한 절반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말이야! 그러니까 하느님에 대한 예배와 나란히 악마에 대한 예배도 드려야 해. 그게 옳다고 생각해. 아니면 악마도 속에 포함하는 그런 하느님을 만들어내야 할 거야. 그래서 세상의 가장 자연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때 그분 앞에서 두 눈을 질끈 감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지. p.75
우리 안에서 영혼이 소망하는 그 무엇도 금지된 것으로 여겨선 안 되네. …(중략)… 그렇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자체로 분명한 의미가 있는 발상들을 쫓아버리거나 그것을 놓고 이리저리 도덕적으로 저울질해서 해치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지. p.135

조력자가 있을 수는 있다. 조언자나 길잡이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는 자신이 직접 찾아야만 한다. 남이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의 꿈에서 살아서는 안 되며 남의 의지에 의해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심연에서 나왔다. 하지만 깊은 심연에서 밖으로 내던져진 하나의 시도인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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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이지 집요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동어반복이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의 말들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고 그 하나를 다르게 표현한 문장들밖에 없다.

우리 각자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일, 자신 안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소질에 완전히 어울리게 되어 자연의 의지에 맞게 사는 일,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이든 그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일만이 우리의 의무이며 운명이라고 느꼈다.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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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간의 관계나 개개인의 감정들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에밀 싱클레어가 된다. 그가 자신을 알기 위해 했던 생각, 말, 느낀 것, 들은 것, 그것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우리는 그것들만 보면 된다. 에밀 싱클레어가 되면 된다.

이 책의 모든 문장들은 읽는 사람 스스로가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표지판이며 내면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무엇을 느껴야 할지 알려주는 조언자이다.

책의 문장들을 읽고 곱씹고 느끼되,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의 내용이 옳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의 내용을 옳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이야기조차도 나 자신을 알아가는 데 필요 없는 잡음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안내 책자라고 보는 것이 옳다.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소개하는 책자.

새로운 신들을 원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이다! 깨어난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고, 그것을 어디로 향하든 자신만의 길을 계속 더듬어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어떤, 어떤 의무도 없다.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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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유명한 고전 문학이지만, 이제서야 처음 읽었다. 과거에 읽으려고 시도한 적은 있지만, 첫 한두 장만 읽고 포기했었다. 이 책뿐만 아니라 서양 문학, 특히나 고전 서양 문학은 의식적으로 기피해 왔다. 번역이 어렵게 된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긴 문장들의 번역을 보면,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한국어로 쓴 게 맞는지 의문이 드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나마 몇 번 있던 시도들은 대부분 중도 포기로 끝났다.

최근에서야, 저작권이 소멸한 오래된 작품들은 번역본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교적 최근에 새로이 번역한 것들도 많아서 괜찮은 번역본들이 많다는 것도. 그래서 도전해볼 수 있었다. 괜찮은 번역본이 무엇인지 검색을 해보고, 민음사(2000년판)와 문학동네(2013년판)의 번역본을 차례로 각각 읽어보았는데 둘 다 나쁘지 않았다. 문학동네 쪽이 읽기는 조금 더 편했지만, 가끔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문장들이 있기도 했다. 그럴 때는 민음사 번역본과 비교해가며 확인했다.

때문에 이번의 도전은 꽤나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그동안 제목은 들어봤으되 번역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던 서양권의 고전 문학들도 이제는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나중에, 다른 번역본으로 다시 데미안을 읽어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그 무엇도 영원히 ‘금지된’ 것은 없어. 바뀔 수 있는 거지.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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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책이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나는 때때로, 내가 반동에 의해 타성에 의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생각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색하고 사고하기를 꺼리게 되었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되었다. 비판적이기보다는 수용적으로 지내왔다. 그것이 당장은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서도, 마음속 저 깊은 곳에는 항상 의문을 품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미래의 나는커녕 현재의 나조차도 모른 채, 이렇게 외면한 채 마냥 흘러가듯이 살아도 되는 걸까? 이 책은 그 질문을 다른 형태로 나에게 던졌다. 너는 너 자신으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스스로에 대해.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