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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 번만 읽기보다는 두 번 읽는 것을 좋아한다. 첫 번째는 그냥 정독. 두 번째는 인상적인 구절을 베껴 적으며 정독. 반복해 읽으면서 이야기의 속뜻이나 의미를 찾는 것을 좋아한다.

다 읽은 뒤에 감상문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 두 번 정도 읽으면 어떻게 써야 할지 대략 구상이 나온다. 그 구상을 가지고 종이에 샤프로 초벌을 적고, 컴퓨터로 그 초벌을 옮기며 몇 번 더 수정한다. 감상문을 쓰는 일련의 과정들을 모두 좋아한다. 감상문을 쓰는 것도 책을 읽는 과정 중 하나이며, 동시에 책을 읽으면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단편집은 감상문을 쓰기가 유독 어렵다. 짧다고는 하나 이야기가 여럿이다 보니 각각의 이야기에 (장편만큼) 몰입하기 어렵고, 여러 이야기에 대한 모든 감상을 적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곱절로 필요하다. 단편집은 끊어 읽기도 편하고 장편에 비해 읽는 부담이 적어서 좋지만, 그런 점에서는 참 애매하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이번에 읽은 책이 바로 단편집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김영하 작가의 장편을 읽은 것에서 여세를 몰아, 주변의 추천을 받아 같은 작가의 단편집을 골라 들었다. 읽기는 재밌게 읽었는데 감상문을 쓰려니 조금 난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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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여덟 개다. 경쾌하면서 냉소적인 작품들도 있고 (오빠가 돌아왔다, 너를 사랑하고도, 너의 의미),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의 것들도 있고 (이사, 마지막 손님, 크리스마스캐럴), 극적이고 흥미로운 전개의 작품도 있다 (보물선).

경쾌한 작품과 음울한 작품의 문체가 확연하게 다르다. 전자는 작품을 일인칭으로 익살맞고 신나게, 마치 자전거를 타고 여유롭게 씽씽 달리는 것처럼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후자는 삼인칭으로 따옴표는 생략하고 줄바꿈마저 최대한 자제하며 답답하고 무겁게, 마치 숨쉬기 힘든 곳에서 힘을 쥐어짜내며 걸어가듯이 이야기를 끌고 갔다. 마치 다른 작가가 쓴 것처럼 각각이 개성적이고 색달랐다. 여태까지 읽었던 다른 단편집들은, 분위기는 다를지언정 '다른 사람이 쓴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같은 작가의 다른 단편집인 '오직 두 사람'에서도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이야기가 분위기별로 뭉쳐있는 순서가 아니라 적당히 섞여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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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오빠가 돌아왔다'는 그 특유의 냉소적인 분위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쾌함을 잃지 않는 전개가 놀라웠다. 당연히 재미있었고, 이렇게 이야기를 쓸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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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

그림자가 없는 소설가가, 그림자가 있는 지인들의 그림자를 들어주는 이야기이다. 알고 보면 본인에게도 그림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가 없다는 것이 그림자인 듯하지만.

그들은 털어놓아야 할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에겐 누군가의 영혼에 어둠을 드리울 그 무언가가 없다.

굉장히 추상적인 단어를 써서 요약했지만 실제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그리고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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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재미있고 좋은 책이었다. 단편집에 대해 감상문을 쓰는 요령만 좀 더 익힌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