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 - [영화감상문] 미스트(2007) -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 질 나쁜 농담 같은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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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난 뒤 감상문을 쓰곤 한다. 짧을 때는 일기에 한두 줄 쓰는 정도지만, 길 때는 노트의 한 페이지를 넘길 정도로 길게 쓰기도 한다. 그렇게 작성한 글들을 올릴 작정으로 블로그를 만든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래 봐야 가장 길게 유지된 블로그가 고작해야 반년 정도 버텼을 뿐이지만. (물론 어느 블로그도 방문자가 있지는 않았다..)

여하튼 길든 짧든 간에, 감상문을 쓸 때 지키는 개인적인 다짐이 하나 있다. '감상문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조사하지 않을 것'이 그것이다.

예전에 처음으로 블로그에 올릴 목적으로 감상문을 쓸 때는, 쓰기 전에 인터넷으로 관련 내용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잘 쓰고 싶었으니까. 제작자 혹은 작가의 배경이나, 해당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뒷이야기,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의 감상문까지,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고 정보가 만족스럽게 모였다 싶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감상문을 썼다.

그런데 그렇게 감상문을 쓰고 보니, 결과적으로 그 감상문들은 내 감상이 담긴 감상문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럴싸해 보이는 문장들과 의미심장한 단어들을 조합하고 나열한, 대학 리포트 같은 느낌이었다. 내 감상을 솔직하게 적기 위한 감상문이 아니라, 그냥 멋진 감상문을 적기 위한 감상문. 아는 체하고 싶어하는 감상문.

그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는, 감상문을 쓰기 전에는 일부러 관련 자료들을 보지 않기로 다짐했다. 인상적인 영화를 보거나 감명 깊은 책을 읽고 내가 느낀 것을 그대로 남겨 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무시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역시 아니다. 사람들은 개성적이고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다. 거기다가 나보다 똑똑한 많은 사람이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에 대해 깨닫는다.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생각이 아닐 것이다.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듣고, 다양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이번에 시도해보는 것이 일단 혼자 감상문을 써 본 뒤,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사람의 감상문을 읽고 감상문을 다시 한 번 써보는 것이다. 글쓰기 연습도 되고 사고하기 연습도 되고.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고 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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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은 네이버 영화 사이트와 다음 영화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사용자 리뷰 중 추천을 많이 받은 글들 몇 개를 골라서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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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호평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 영화를 '생각할 것이 많은 영화'라고 이야기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그 속에서 튀어나오는 정체불명의 괴물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을의 대형 마트, 미지의 것 앞에서 힘을 합치기는커녕 편을 갈라 싸우는 사람들, 사이비 종교의 출현 등.. 영화에 등장하는 객체나 사건들 각각이 표면적인 것 이상의, 상징적인 은유를 갖고 있다. 거기다가 여타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들과는 다르게 주인공이 영웅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나, 마지막 결말에서의 반전이 깊은 여운을 줘 인상적이라는 평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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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 영화에 대해 악평하는 사람들이 평은 대체로 하나의 내용으로 귀결된다. 개연성이 부족하고, 이야기 전개의 설득력이 적다는 것.

처음에 혼자 가게를 빠져나간 여성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괴물에게 공격받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돌아갔고, 최후에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구출되었다. 영화 초반에 다른 사람의 도와달라는 요청을 자신의 아이를 지켜야 한다며 거절했던 주인공이, 살아날 가망이 희박한 사람을 위해 아이를 남겨둔 채 죽음을 무릅쓰고 가게를 나서기도 한다. 주인공이 괴물로부터 잘라낸 촉수는 나무 막대로 툭 건드리자 뜬금없이 녹아서 사라져서 끝내 이웃을 설득하지 못했고, 날벌레 형태의 괴물이 광신도에게 다가갔음에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공격하지 않았다. 주인공 일행이 마지막에 탈출할 때는 밝은 라이트를 켠 채 차의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단 한 번도 괴물들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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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호평하는 사람들의 의견보다는 악평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더 동의한다. 물론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고 하다가 무리를 한 느낌이다. '조금 덜 말해주긴 할 건데 그 부분은 알아서 상상해 봐'라는 것이 제작자의 목적이었겠지만, 그 개연성이나 근거가 지나치게 부족하다 보니 '덜 말해주는 부분'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보다는 반감이 생긴다. '오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된 거지?'가 아니라 '헐 이게 말이 되냐?' 같은 느낌.

물론 영화에게, 영화 속의 모든 크고 작은 사건에 대해 인과를 설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 때로는 불친절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영화를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도 있다. 단 그것은 다른 간접적인 근거를 통해 개연성 있는 추론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다. 단순히 '자 알아서 상상하세요' 하고 던져주는 것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다른 사람들의 감상문을 읽고 가장 놀란 점은, 생각보다 결말의 반전을 호평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몰입감 있게 잘 보고 있다가 결말에서 크게 실망을 했던 나로서는 정말 의외의 반응이었다. 반전에 전율을 느꼈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결말 덕분에 이 영화를 명작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등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갑자기 안개가 걷히는 점이나, 그 시끄러운 궤도 차량이 소리도 없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점이나, 영화 초반부에 혼자 가게를 떠났던 여자가 상처 하나 없이 구출된 채 주인공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나..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 것도 같은데 너무 과하지 않나? 싶다. 이전의 감상문에서도 말했지만, 그냥 주인공을 골려 먹으려는 아주 질 나쁜 농담 같은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