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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이 되어서야 사랑을, 욕망이라는 것을 그는 처음 느꼈다. 그 감정으로 인해 그가 쌓아 올렸던 그의 인생은 철저히 부정당했다.
그의 삶은 면밀히 계산되고 계획된 것이었다. 문학을 계급적으로 나누고 차별하는 소위 지식인들의 천박함을 모멸하고, 그들에 의해 구획된 사회에 분노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그러한 세태를 비웃고자 했다. 그래서 시끄러운 세상 속으로 적요라는 이름을 갖고 뛰어들었으며, 평생을 시만 쓰면서 시 속에 감정이 아니라 계산을 넣었다. 그는 시인으로서 추앙받았으나 그가 죽었을 때 그 신성을 스스로 부수어 버림으로써 지식인들이 말하는 문학을 비웃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만들어진 삶을 은교라는 처녀를 만나면서 틀어지기 시작한다. 사랑은 의미 없고 일시적인 것이며 절제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어쩌면 진짜 사랑할 상대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었을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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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인간을 판단할 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는 나이 차이가 오십 년이나 나는 처녀 은교를 사랑했다. 그것을 범죄나 부도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막 태어난 아기든 죽기 직전의 노인이든 욕망을 가진 것은 같다. 우리 모두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듯이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바라며 욕망한다. 그것 자체를 악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한 욕망에 이기지 못해 범죄나 부도덕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본질을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늙었다는, 그 단 하나의 사실이, 범죄의 증거가 될 수 없고 무욕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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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는 시인 이적요의 욕망을 중심으로 '처녀' 한은교와 '멍청한 소설가' 서지우가 얽히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은교는 가볍고 헤퍼 보이면서도 속이 깊은 면모를 갖는다. 그녀는 시인에게 있어 욕망의 대상 그 자체다. 그녀가 시인 앞에 나타나지 않았었다면 그들이 그렇게 파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삶이 더 나은 삶이었을까 하는 것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자신의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 자신을 모멸하는 스승. 대필로 인해 더 틀어지기 시작한 둘의 관계는 은교를 둘러싼 두 남자의 대립과는 상관없이 종국에는 비극으로 끝났을 것이다. 은교를 향한 시인과 그의 제자의 욕망이 그들의 비극적 결말의 원인이 아니라, 둘의 관계에 쌓이고 쌓였던 오해와 갈등이 그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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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욕한 삶이 진정한 삶이라 여기는 수행자들도 있다. 하지만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을 억누르기만 하는 삶이 과연 옳은가.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나이와 관계 없고 능력과 관계 없다. 중요한 것은 욕망에 대해 솔직해지고 그 욕망에 대해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시인은 은교를 탐욕스럽게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