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 (2017)

2017. 7. 1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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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일제강점기 일본. 주인공은 일본에서 독립운동 겸 무정부주의 운동을 전개하는 단체, 불령사의 리더 박열과 그의 애인 후미코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일본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을 돌리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조선인이 혼란한 틈을 타 테러를 자행하고 우물에 독을 풀고 있다'라고 일반 대중을 선동했다. 선동에 의해 일본의 군, 자경단 등은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했고, 일본 정부는 학살로부터 언론의 관심을 떼어내기 위해 '일본 천황의 황태자를 살해하려 한 혐의'로 주인공들을 체포한다.

체포당한 박열과 후미코는 순순히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인정한다.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을 직감한 그들 차라리 재판을 이용해 일본에서 일어난 조선인 학살을 널리 알리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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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로 판결 나면 사형이 거의 확실한 중범죄의, '대역죄'의 누명을 썼음에도 박열은 당당하다.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죽음마저 이용하고자 한다. 그의 애인인 후미코 또한 피할 수 있었던 혐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애인과 운명을 같이 하고자 했다. 그녀의 당당함 또한 박열의 그것에 뒤처지지 않는다.

죽음마저 피하지 않는 각오 앞에서 휘둘리는 일본 정부와 사법부의 모습은, 영화 도입부에서 '철저한 고증'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믿기 힘들 정도로 우스꽝스럽고 꼴사납다. 또한 그들을 그렇게 제멋대로 농락하는 박열과 후미코의 모습은, 그들의 신분이 피의자라는 것을 잊게 할 정도로 통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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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주제와는 달리, 영화는 꽤나 유쾌하다. 웃음과 진지함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무게감 있게 나아간다. 이런 영화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극의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그 균형을 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영화 혹은 감동적인 영화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던 것인지, 전반부에 극의 분위기와는 지나치게 상반된 분위기로 눈물이나 감동을 강요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실수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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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에는 지나치게 세트장 티가 나는 배경과, 지진 상황의 어설픈 CG로 인해 잘못된 영화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 배경은 구치소와 재판장이고 주 내용은 투옥과 재판이기 때문에, 아쉬운 점일 뿐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또 영화의 출연진들이 일본어를 굉장히 많이 사용하는데, 배우에는 재일교포 혹은 일본인 배우가 많이 포함되어 있고 일본인이 아닌 배우들도 준비를 많이 한 것인지 어색한 부분은 별로 없었다 (단, 이것은 내가 일본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색함을 느끼지 못한 것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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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모든 치부를 덮고 가리려고 했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수습하기보다는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고,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로 일관했으며, 박열의 사형을 미루면서 그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우고자 했다. 그러나 권력으로 행해지는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 속에서도, 박열과 후미코는 결코 외면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신념을 지켰다. 그 당당함이 있었기에, 현재의 우리는 왜곡되지 않은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의지로 결정한 선택이 비록 죽음을 향한 길일지라도 삶의 부정이 아닌 긍정일 것이다.'
'내 육체야 자네들이 죽일 수 있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