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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에, 누구나 그렇듯,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인간관계에 실패하기도 했고,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로부터 좌절을 얻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결론은, 그 모든 것들로부터 회피하는 것이 차라리 아늑하고 편안하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점점 혼자를 선호하게 되었고 고독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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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때면 이따금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것은 대체로 과거의 나다. 과거의 쪽팔렸던 일, 부끄러웠던 일, 창피했던 일들을 들고 와서는 다짜고짜 내게 들이민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 기제다.

말을 걸어오는 것은 때때로는 망상 속의 나다. 존재하지 않았던 일들을 있었던 것인 양 꾸며내거나, 있었던 일의 전개와 결말을 비틀고 치장해서 내게 보여준다. 나는 그것들에 취해서 한참을 음미하다가, 나중에서야 자괴감 속에 그를 쫓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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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됨으로써 나의 삶은 평화로워졌다. 때때로 과거의 나 혹은 망상 속의 내가 말을 걸어 시끄럽게 했지만 잠시일 뿐이었다. 조금만 참고 인내하면 다시금 평온이 찾아왔다. 나는 내 삶이 마음에 들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평화로운 삶이 맞는 것인가. 이 책은 내게 그런 질문을 하고 있다.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불안에 떨 때가 있을지언정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던 주인공은 자신의 세계에 균열이 가고 깨지기 시작하자 그 틈새로 터져 나오는 물길을 버티지 못했다.

고독은 그에게 피난처일 뿐 이상향이 되지는 못했다. 그는 진정한 평온을 얻은 것이 아니라 잠시간의 고요를 얻은 것뿐이었다. 책과 글귀 속에 파묻혀 외부를 외면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울타리가 무너지자 자신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는 종국에, 압축기 속에서 평안을 얻었을까?

나는 나에게, 그와 같은 결말을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