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2016)

2017. 3. 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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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10살도 안 된 소년이다. 인도 빈민가 가정의 삼 남매 중 둘째로, 홀어머니와 아직 십 대인 형까지 일하지만, 하루하루 끼니를 챙겨 먹기에도 빠듯하다. 어느 날 소년은 늦은 밤에 있는 막노동일을 위해 집을 나서던 형을 보고는 자신도 일할 수 있다고 떼를 써서 같이 집을 나선다. 하지만 잠에 취해서 일터 근처 기차역에 홀로 남겨지고, 추위를 피해 운행을 종료한 기차에 들어가 잠들었다가 기차가 출발하는 바람에 미아가 되고 만다.

시기는 1980년대 중후반. 소년이 의도치 않게 기차를 타고 이동한 거리는 무려 1,600km. 도착한 도시는 사용하는 언어마저 다르다. 과연 이 소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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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는 15시 27분에 도착했다. 아직 무슨 영화를 볼지 정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15시 30분에 상영 예정인 영화가 있었다. 잠시 서성거리며 고민하던 나는 해당 영화의 팜플렛을 급히 찾아 대충 훑어보고는 나쁘지 않겠다 싶어 매표소로 향했다. 그 짧은 시간 내가 스쳐 본 팜플렛의 문구는 이거였다.

' 구글어스로 25년 전 기억을 찾다.'

따라서 내가 '구글어스로 과거의 자신이 있던 곳을 찾아간다' 정도로 이 영화의 내용을 기대했다고 해도 딱히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내가 간과했던 것은 내가 본 것은 팜플렛의 절반뿐이었다는 것이다 (진열대에 꽂혀있는 상태의 팜플렛을 꺼내지 않고 훑어봤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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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린 주인공이 미아가 돼서 낯선 도시에서 고생하고, 어찌어찌 (아마도) 국가가 운영하는 보호소에까지 들어갔다가 입양되기까지의 과정을 꽤 상세하게 보여준다. 아마 전체 상영 시간의 절반 정도는 할애한 것 같다. 구글어스로 장소를 찾아보고, 추론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직접 찾아가 보기도 하고 등등, 고생 끝에 비로소 원하는 곳을 찾아내는 것으로 전체 줄거리를 예상하던 나에게는 꽤나 기대 밖의 내용이었다.

나머지 절반의 내용도, 어디까지나 주인공과 주변 인물 간의 갈등, 감정 변화에 집중한다. 추론 같은 것은 없다. 그냥 몇 년을 구글어스만 끼고 살면서 어렸을 적 집을 찾다가 결국에는 찾는다 정도의 묘사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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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이 실망스럽냐면 그것은 아니다. 위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제한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었던 바보 같은 사람의 넋두리일 뿐이다. 영화는 무난한 줄거리에 슬픈 사연을 담은 전형적인, 감동적인 이야기다. 딱히 개연성이 부족하지도 않고 억지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괜찮은 영화인데 잘못된 선입견이 오히려 감상을 망친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이제 슬슬 입양되고 시간이 파바박 지나면서 어른이 된 뒤에 구글 어스를 알게 돼서 어렸을 적 집을 찾기 시작하겠군!'이라는 생각을 몇 번 했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 생각들은 거의 다 틀렸다). 덕분에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평소보다 조금 나빴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