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보다 더 센 태풍이 한차례 마을을 지나가고, 사람들은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대형 마트로 몰려든다. 그 와중에 아주 짙은 안개가 몰려와 마을을 덮고, 안갯속의 수수께끼의 무엇인가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마트에 갇혀버린 채,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

안개와 안갯속에서 나타나는 괴물들의 정체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영화 중반에 한 군인이 괴물들에 대해 '군의 과학자들이 실수로 다른 세계로부터 불러들인 것들'이라고 설명하지만, 그 말의 사실성이나 개연성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안개와 괴물들은 그냥 '미지의 무언가'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무언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앞서 겪은 자연재해와 다를 바 없지만,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자연재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을 불러온다. 마트의 사람들은 미지의 것들 앞에서 무력하게 떨고, 두려워하고, 미쳐간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그러한, 미지의 것 앞에서의 인간들의 절망과 공포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전기가 들어오고 911을 부를 수 있는 시점에서는 충분히 이성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성적인 사고를 유지하기 힘들다. 모두가 힘을 합쳐도 생존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는 먼 미래의 생존을 걱정하기보다는, 눈앞에 놓여 있는 공포와 절망을 지우기 위해 서로 반목하고 헐뜯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과 일행들은 자신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제물로써 사용하려고 하는 광신도들의 포위망을 뚫고 어렵사리 차에 올라 마트를 빠져나온다. 한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보면 안개를 빠져나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붙들고 안갯속을 헤쳐나간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마트에서 봤던 것보다 더욱더 크고 많은 괴물과 안개뿐이었고, 차의 기름이 다 떨어질 때까지 안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절망의 한복판에서, 절망도 삶도 모두 끝내기를 결심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잔인한 점은, 주인공만큼은, 절망에서 도망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들을 포함한 일행들을 다 죽이고, 총알이 떨어져 괴물들에게 죽을 요량으로 차 밖으로 뛰쳐나온 주인공에게 다가온 것은 마트 점원을 끌고 가던 촉수도, 여직원에게 독침을 놓았던 대형 날벌레도, 군인 몸속에 알을 낳았던 거미도, 웬만한 산보다도 더 거대했던 커다란 짐승도 아니라, 괴물들을 제압하면서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는 군인들이었다. 단 몇 분 전, 몇십 초 전,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고통이라도 줄이자는 생각에 모두를 자기 손으로 직접 죽였건만. 자신은 비로소 안전해졌지만 아마도 가장 큰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 결말은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만약 결말로써 미지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그냥 주인공도 괴물의 손에 죽는 게 나았을 것이다. 반전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었다면 주인공이 총을 쏘기 직전에, 일행의 차 옆으로 군인들이 지나갔으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단 한 가지만 빼고 모든 일을 매듭지은 직후에, 갑자기 안개가 걷히고 구출되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이고 괴물들을 퇴치하고 있는 군인들이 보이다니. 총을 쏘기 직전 그 적막함 속에서 간간이 괴물들의 울음소리는 들렸건만, 군인들의 화염 방사기 소리와 그 큰 굉음의 궤도 차량 운행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니. 말도 안 된다. 이건 잘 만들어진 반전이 아니라 개연성 없는 질 나쁜 농담일 뿐이다. 거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