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 (2016)

2016. 5. 1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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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사소한 걸로 싸우고 사소한 걸로 사이가 틀어지곤 한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중학생 때, 지금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이유로 한 친구와 다투고는 이후로 대화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하찮은 이유였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는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겠지.

영화 초인의 주인공 세영도 그렇다. 그녀에게는 단둘이 자매처럼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 수현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 친하고 소중한 친구. 하지만 세영의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읽어?’라는 질문에 수현이 ‘책이 유일한 나의 친구니까’라고 대답하면서 둘의 사이가 틀어지고 만다. 나라도 섭섭했을 것이다. 눈 앞에 제일 친한 친구를 두고 ‘책이 유일한 친구’라는 말을 하다니. ‘넌 친구가 아냐’ 이런 뉘앙스로 들릴 수밖에 없는 말 아닌가.

수현의 의도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오해로 시작된 둘의 불화는 수현의 자살로 인해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그녀가 어째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인지, 친구와의 절교 때문이었는지, 부모님의 학대 때문이었는지, 건강이 나빠서였는지, 원인은 알 수 없다. 세영은 자신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는 생각에 큰 충격에 빠진다.

어째서 수현은 책을 유일한 친구라고 했던걸까? 어째서 수현은 자살할 생각을 했던 걸까? 그것을 알고 싶었던 세영은 그녀가 되어보기로 한다. 세영이라는 이름 대신 수현이라는 이름을 쓰고, 그녀가 읽었던 책들을 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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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책에 길이 있냐?’
‘아니.’
- 영화 <초인> 中

세영은 읽었던 책 중의 한 명의 저자를 직접 만나고 싶어서 작가가 살고 있다는 몽골로 날아간다. 하지만 푸르고 광활한 들판을 보면서 ‘굳이 작가를 만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책에는 길이 없다. 책을 쓴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도 길은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길을 찾았을 때 잘 걷는 방법을 말해줄 뿐이다. 그녀는 낯선 땅에서 직접 길을 찾고 길을 걸으면서 그것을 깨달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길을 물어본다고 답은 얻을 수 없고, 직접 걸어가면서 찾아 나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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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저씨는 29살인데 아직도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대’
- 영화 <초인> 中

이 영화는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친구, 가족, 미래, 그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성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셨어. 나는 기계 체조 선수인데 운동을 계속해야 하는 건지,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친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주인공들은 청소년이지만 비단 청소년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이를 먹더라도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나 미래에 대해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초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주변의 상황 때문에 포기하고 절망하여 쓰러질 때도 있지만, 딛고 일어날 수 있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 세영과 도현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