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닉 (2015)

2016. 4. 9. 20:20

#

영화는 조용하다. 잔잔하다거나 고요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좀 더 어감이 맞는 말을 고르자면 적막하다, 혹은 쓸쓸하다가 맞을 것이다. 마치 멈춰있는 듯한 카메라. 정적인 배우들의 동작, 자세, 대사. 관객을 위한 친절한 대사나 상황은 없고 오로지 주인공의 삶의 단편을 잘라서 보여주는 전개. 그런 연출 위에서 영화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광스럽거나 고귀하거나 화려한 죽음이 아니다. 적막한 죽음이다.

#

주인공은 간병인이다. 몸을 다루기 불편한 사람들을 돌본다. 가족들도 돌보기 힘든 수준의 환자들의 바로 옆에 붙어서 거동을 돕고 씻기고 먹인다.

주인공은 환자들을 돌보면서 그들의 가족이 된다. 환자를 최대한 이해하고 사랑하려 한다. (영화상에서의) 첫 번째 환자가 죽었을 때는 마치 자신의 아내가 죽은 것처럼 슬퍼했고, 두 번째 환자의 가족들에게 성희롱으로 고소당할 위기에 놓여 쫓겨나면서도 끝까지 환자를 걱정했다. 간병인이라고 알려주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를 가족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그런 주인공에게 세 번째 환자인 마사가 자신을 안락사시켜달라고 제안한다. 그녀는 병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어갈 자신의 미래를 감당할 수 없었다. 주인공은 과거에 아들을 직접 안락사시킨 경험이 있다. 자세한 경위는 나오지 않지만, 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아들을 위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의 제안에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고민 끝에 그녀의 뜻을 받아들인다.

#

영화는 무섭도록 조용하다. 마치 수사를 완전히 배제한 소설 같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과장이나 감성팔이도 없다.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말만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엔딩 크레딧을 포함해서 끝까지 배경음악조차 없다.

영화는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여백이 많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생각할 거리가 생긴다. 그냥 보여주는 것만 보려고 하다가는 지루하고 이상한 영화가 되기 쉽다.

#

영화는 주인공의 교통사고를 마지막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동네에서 러닝 중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신호위반 차량에 치인다. 영화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과격한 사운드를 동반한 강렬한 장면.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조용한 영화였고 또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장면이 1분 이상 길게 이어지던 주인공의 러닝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발생한 사고에 영화를 보던 사람들도 놀랐는지 여기저기서 작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아마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느긋하게 관람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영화가 마지막으로 분명하게 할 말이 있었던 것 같다. ' 죽음은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언제라도 이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