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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정은 고아였다. 아버지는 군란에 휘말려 죽고 어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떤 장사꾼 아래에서 노비처럼 부려지다가 도망쳐서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생활하던 그는, 멕시코로 떠나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멕시코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멕시코행 배가 출발하는 제물포에는 소년 말고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들었다. 제대군인, 몰락한 황족, 도망 중인 신부, 박수무당, 좀도둑, 농부, 통역... 이백여 명의 사람들은 기대와 불안을 품고 이역만리 미지의 땅을 향해 출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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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9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다.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황제국을 선언하지만 나라를 지켜낼 힘이 없었다. 사람들은 풍전등화 같은 나라에서 비루하게 살기보다는 운명을 바꿀 기회를 거머쥐기를 원했다. 그런 그들에게 해외로 나가 몇 년 힘들게 일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솔깃한 유혹이었다. 많은 사람이 멕시코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떠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20세기 초 세상은 어딜 가더라도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긴 항해 끝에 멕시코의 유카탄반도에 당도한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역사의 흐름에 온몸으로 부딪혔다. 착취, 폭력, 전쟁, 내전, 혁명..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들의 발버둥이, 두 주인공 김이정과 이연수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쳤다. 두 주인공이 명백히 있지만 이 작품은 군상극에 가깝다. 둘에 집중하지 않고 이야기는 그 다양한 사람들을 오가며 이야기를 다채롭게 풀어낸다.

역사는 잔인했고, 언제나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까웠다. 이정과 연수는 한 때 서로를 뜨겁게 사랑했지만, 역사와 운명은 둘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남자는 착취에서 도망치다가 전쟁의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여자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겨우겨우 다른 남자에게 몸을 의탁할 수 있었다.

해피엔딩, 감동적인 이야기, 즐거운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이 책은 역사를 타고 흘러간다. 그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로서 잘 정돈된 기승전결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야기는 나의 기대를 항상 배신하며 끝까지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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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역사를 읽었을까? 아니면 역사를 읽다 보니 써야 할 이야기가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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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은, 못해도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