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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는 옳은 것이 옳은 것이라고 믿는 남자다.
그는 정직한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는 남을 팔아먹지 않는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과 관련된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요즈음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믿는다. 오베는 고집이 있는 남자이고, 타협이 없는 남자이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까칠하다고 말한다. 사회성이 없다고도 말한다. 오베 스스로도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베의 아내는 그가 모든 것에 시비를 건다고 종종 오베와 다투었다. 하지만 오베는 시비 따위를 거는 게 아니었다. 그저 옳은 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태도란 말인가? p.53
"사람들은 모두 품위 있는 삶을 원해요. 품위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무언가를 뜻하는 거고요." 소냐는 그렇게 말했다.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p.370
그런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꼭 한 명 있었다. 그의 아내 소냐다. 그녀는 요즈음 같은 세상에 그처럼 정직하고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자처럼 보아주는 오베를 사랑했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소냐는 알았다. p.206
오베는 자기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만 이해했다. 시멘트와 콘크리트, 유리와 강철, 공구들, 가늠할 수 있는 물건들. 그는 올바른 각도와 분명한 사용 설명서를 이해했다. 조립 모델과 도면, 종이에 그릴 수 있는 것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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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가 죽었다. 교통사고로 아이를 유산하고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음에도 굳세게 살아가던 그녀는, 결국에는 병을 얻고 병마와 싸우다가 죽게 된다. 자신을 이해해주던, 사랑해주던 유일한 사람이 죽었다. 오베에게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그다지 없었다.
아내가 죽은 지 6개월 뒤, 오베는 직장에서 강제 조기 정년퇴직을 당한다. 그는 아내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죽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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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죽음으로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다.
죽으려는 순간 이웃이 문을 두드린다. 죽으려는 순간 목을 매달았던 밧줄이 (불량품이라 그런지) 끊어진다. 기차에 뛰어들려고 준비하는 참에 먼저 떨어진 사람이 있어 그를 구하느라 타이밍을 놓친다. 방법을 계속해서 바꿔보지만 세상은 그의 죽음을 계속해서 막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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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독한 고집불통이다. 그에게 장사치와 공무원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사기꾼들이다. 사브 이외의 다른 (대부분의) 브랜드의 자동차를 사는 사람들은 얼간이다. 누구든 성인이라면 스스로 집을 수리하고 자동차를 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성인이 운전면허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인이 자동차 후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며, 주차 금지 구역에 주차를 하는 것을 보면 득달 같이 달려가 차를 뺄 것을 요구한다.
아집으로 똘똘 뭉친 괴팍하고 재수 없는 아저씨로 보기에 딱 좋다. 하지만 그는 자살 시도 직전에 들린 이웃의 노크 소리를 무시하지 못했다. 타인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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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죽은 아내를 따라서 자살하려는 남편. 작품의 주인공의 상태만 보자면 이 소설은 우울하거나 해학적일 것이라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소설은 거친 성격의 주인공과 대비되게 매우 잔잔하고 유쾌하다. 오베는 자신의 죽음을 막아서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보며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이들을 돕지 않고 아내를 따라갔다간, 그의 말마따나 그의 아내가 오베를 혼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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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그는 조용히 죽는다. 언제든 죽어도 문제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상태에서 지병인 심장 질환으로, 조용히 잠든 뒤 눈뜨지 않게 된다. 장례식 같은 허례허식은 하지 말고 아내 옆에 매장만 해달라는 그의 유서와는 달리 그의 이웃은 그의 장례식을 치렀고, 식장에는 생전 오베에게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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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단 한 번도, 노골적인 삶의 찬가를 하지 않는다. 자살은 나쁜 것이라는 표현 또한 전혀 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오베와 그의 이웃 간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면서, 삶이란 단편적이지 않고 일차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삶이란 쉽게 포기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한 오베에게도, 아직 소중한 것이 있었고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의 죽음은 극적이지 않지만, 자연스럽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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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다른 상황을 비유로 들며 인물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문장들은 읽기에 즐겁고 신선했다. 번역은 원문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던 것인지 때때로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대체로 무난했다.
4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40개의 작은 이야기들로 나뉘어져 있어 읽는 데 부담이 없었다.
읽는 내내 즐거웠다. 같은 작가의 다른 책에도 관심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