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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강렬하다. '개인주의자 선언'. 이론서나 철학서일 것만 같다. 개인주의자는 이러저러한 것이니 여러분도 개인주의자가 되시라! 이런 자기주장이 강한 책일 것 같다. 제목만 보면.

하지만 책의 서두에서 저자가 밝히듯이, 이 책은 에세이다. 저자가 어딘가에 기고한 글들, 혹은 평소의 생각들 경험들을 가지고 쓴 글들이다.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다. 어디까지나 저자 자신의 생각을 쓰고 있다. 부담 갖지 말고 가볍게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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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개인주의자라는 것이 이기주의나 고립주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타인과 유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고, 따라서 개인주의라고 해서 타인을 배척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개인 자신의 행복. 제일 중요한 것 하나만 추구하며 다른 모든 가치를 절하하는 것이 아니고, 가장 중요시하는 것과 다른 것들을 조화롭게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주의란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사회의 근간을 형성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p.26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들이 모여 있는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이다. (중략) 집단주의로 인한 압력에 짓눌리지 않고 각자 제 잘난 맛에 사는, 서로 그걸 존중해주는 개인주의 문화의 강력함이다. 집단주의 문화권으로 분류되는 동아시아 경제 우등생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p.56

나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여지껏 갖고 있던 의문, 스스로에 대해 정의하려고 할 때마다 모자랐던 한 조각을 발견한 느낌이다. 나는 스스로가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이기주의와 연결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개인주의자지만 그게 이기적이라는 뜻은 아니야! 라고 마음속으로는 백 번 이야기해도 밖으로는 내뱉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만한 근거가, 타인은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하게 개인주의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개인주의가 실제로 의미하는 바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나는 정말 개인주의자인가. 개인주의자를 추구하는가. 잘못되거나 모자라거나 부족한 점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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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내용만 좋은 것이 아니라, 문장들도 훌륭하다. 판사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는 맛깔나고 읽기 좋은 문장들로 책을 채웠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이 북적대는 술집 같은 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회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내 생각일 뿐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그저 저 별에서 저런 과정을 거쳐 자란 인간들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것을 서로 알게 될 뿐이다. p.9
집단, 공동체가 개인에 우선하는 숭고한 유기체고 개인은 이를 위해 기쁘게 헌신하고 희생해야 하는 나사못인 것이 아니다.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신의 나라로든, 집단에 대한 헌신을 찬양하며 사람들을 몰고 가는 피리 소리는 불길하고 미심쩍다. p. 21
내성적인 이들도 외향적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행복을 느끼는 체질인 것이다. 미각이 지나치게 예민해 강한 맛의 음식에는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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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유명한 학자나 저자의 말, 혹은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서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건 사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좁은 주제 안에서 시종일관 동어반복이나 다름없는 내용들로 책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냉철하게 파헤치는 측면에서는 탁월했다. 아름다운 말로 포장된 인간사회 구조의 곳곳에 탐욕과 이기심, 지배와 피지배 구조가 있다는 걸 일깨워주었다. 의문점은 그렇게 냉철하고 날카롭고 실증적이던 비판의식이 대안 제시 단계에서는 갑자기 종교 수준의 낙관주의로 돌변한다는 점이었다. p.100
영양실조에는 다양한 구조적 문제가 엉켜 있었다. 위생설비가 형편없고 깨끗한 물이 부족했으며 사람들은 영양실조에 무지했다. 스터닌이 보기에 이런 분석은 모두 tbu(true but useless. 사실이지만 쓸모없는)에 불과했다. 영양실조로 당장 죽어가는 수백만 명 아이들이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릴 수 있겠는가. 그는 근본 원인 대신 곧바로 개선 가능한 방법을 찾았다. p.160
미디어 이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현재의 충격에서 실시간 SNS로 연결되어 모든 것이 생중계되는 지금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이 순간의 현재에만 집중하는 현재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라면서, 과거의 불의를 극복하고 미래의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식의 20세기적 서사 구조가 붕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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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유일하고 분명한 단점이라고 한다면, 제목이 너무 세 보인다는 것. 그것만 이겨내고 책을 읽어본다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