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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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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5.18 광주 민주 항쟁 때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소설은 항쟁의 희생자, 살아남은 사람, 고문받은 사람, 남겨진 유가족 들 각각의 시선과 생각들을 보여준다. 시점도 사건이 일어난 당시, 일어난 지 몇 년 후, 십몇 년 후, 이삼십 년 후 등 다양하다.
6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6장이 모두 연결되어있지만 화자와 시점을 달리함으로써 사건에 입체적으로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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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들, 비극적인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항상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 '내가 저 상황에 처했으면 어떻게 했을까?' 일제강점기에 살고 있었다면, 6.25전쟁 당시에 라면, 군부 독제 시절이라면.
이러한 상상으로 인해 생겨나는 공포들은 웬만한 공포 소설 혹은 영화들이 주는 것보다도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앞으로 세상이 어떤 식으로 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소설 또한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무서운 소설이다.
읽으면서 생각한다. 나는 등장인물들처럼 군부가 쳐들어올 걸 알면서도 상무관에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살아갈 수 있었을까.
피해자들의 상황과 심정이 현실적이고 절절해서, 마주하기 쉽지 않다.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p.95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p.135
생시에 가까워질수록 꿈은 그렇게 덜 잔혹해진다. 잠은 더 얇아진다. 습자지처럼 얇아져 바스락거리다 마침내 깨어난다. 악몽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기억들이 조용히 당신의 머리맡에서 기다리고 있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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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쓴 다른 소설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멀지 않은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비극적인' 일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보니, 작가의 생각과 상상력이 그 속을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무언가가 훼손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모욕으로 다가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인지 작가는 추상적인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였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처럼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하지만, 내면을 보여줌에 있어 작가 특유의 모호하고 직설적이지 않은 표현들이 적다.
덕분에 '한강스러운' 문장을 읽는 맛은 줄었다. 이야기에 집중하기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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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사실 잘 찾아 읽지 않는다. 무섭고 가슴 아프니까. 하지만 출간된 지 4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꾸준한 인기를 갖고 있기도 하고, 최근 한강 작가에 대한 관심이 늘기도 해서 읽어보았다.
읽기를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