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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이다. 책표지 디자인도 요즈음 디자인으로 보이고 초판 인쇄일도 2010년으로 되어 있어서 영락없이 최근에 쓴 단편집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80년대 중후반에 쓴 소설들의 모음집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09년에 출간한 작가의 장편 1Q84의 인기에 힘입어 (혹은 편승하기 위해) 우리나라 출판사가 뒤늦게 번역 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딱 하나 읽었다. 가장 유명한 '노르웨이의 숲'. 대학교 신입생 때 혹은 그 다음 해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 읽고는 "이상한 소설이네" 하고 감상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다시 읽으면 다르게 다가올 것 같기는 하다). 읽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내용도 거의 기억나지 않으니, 작가의 작품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이 책을 읽었다고 해도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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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언급하기를, 단편 소설은 "장편이 되지 못할 소재를 유효하게 활용하기 위한, 혹은 짧은 형식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심상 등을 나타내기 위한 그릇"이며 단편 소설을 쓰는 것은 "내가 가진 문장적인 근육을 여기저기 세세하게 움직여서 그 움직임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쓰인 단편들이 어떤 공통적인 주제의식이나 테마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단편집은 그저 마음 편히, 작가가 장편에서 미처 못다 한 이야기들 혹은 장편으로 발전시키기 전의 이야기들을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어떤 스타일인가'를 느끼기에 괜찮은 소설집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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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의 분위기가 좋다. 특히나 '반딧불이'와 '비 오는 날의 여자 #241, #242'의 분위기가 좋다. 절제되고 가라앉은 분위기, 거기서 느껴지는 허무함, 우울함. 그런 것들이 좋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다. 죽음은 이미 내 안에 있다. (중략)
나는 그것을 확실히 인식했다. 그리고 인식함과 동시에 그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주 어려운 작업이었다. 나는 아직 열여덟 살이었고, 사물의 중간점을 찾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p.30
그러나 나는 되도록 모든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심각하게 생각하기에 세계는 너무나 불확실하며, 아마 그 결과로서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를 강요하게 될 것이다. p.40
그럼에도 문장들은 얌전하지 않은 것 또한 좋다. 이것은 비단 위의 두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여섯 단편 모두가 그러하다. 비유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있고 재미있다. 신선하달까, 선명하달까, 그런 느낌이다.
계절만이 슬라이드 필름을 갈아끼우는 것처럼 지나갔다. p.31
요컨대 양쪽 귀의 신경이 균등하게 작용하다가도 때때로 오른쪽의 침묵이 왼쪽 소리를 뭉개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침묵이 기름처럼 오감을 뒤덮는다. p.85
그녀가 초인종을 누르자 휑한 집안에 초인종 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치 거대하고 텅 빈 위장 밑바닥에 앉아 누군가의 커다란 웃음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p.197
산딸나무의 가느다란 가지에는 빗방울이 갓 죽은 물고기의 이빨처럼 곱게 줄지어 있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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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모르는 사람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알고 있는 사람,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은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어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의 책을 찾게 만드는 에피타이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볍게 읽기에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