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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에, 한두 달 사이 읽어본 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힘겨운 책들이었다. '야만적인 앨리스씨', '내 젊은 날의 숲', '남한산성', '비행운' ('피프티 피플'은 마음 편히 읽기는 했다). 재미야 있지만 아무래도 좀 지치는 책들이었다.

안그래도 끔찍한 폭염에 체력과 정신력은 점점 말라가는데, 그런 책을 연속으로 또 읽으려니 좀 힘겨웠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서늘한 긴장감이나 속도감, 그런 것이. 그렇다면 역시 미스터리 아니면 추리 아니면 스릴러다! 그렇게 생각하고 서점을 찾아갔다. 여러 책들을 뒤적거리다가 결국 집은 것이 이 책, '초크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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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주인공이 어렸을 적 친구들과 함께 목격한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사건이 일어난 지 30년 후,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는 그때의 이야기를 가지고 책을 내자며 주인공을 찾아온다.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생각해보겠다는 주인공에게, 친구는 '그 사건의 진짜 범인을 알고 있다'는 말을 흘리고 주인공과 헤어진다. 그리고 다음 날 친구는 시체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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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입력이 있다.

이야기는 2016년 현재와 사건이 일어난 1986년 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호흡이 길게 이어지지 않고 짧게짧게 끊어가며 진행되지만, 흡입력 있는 문장과 전개가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장황하지 않은 묘사와 문장들은 머릿속에서 장면들을 저절로 재생한다. 물고 물리는 사건과 인간관계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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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은 부족하다.

이야기가 너무 여러 갈래로 난잡하게 진행되면서 중심 사건인 초크맨 사건에 대해 덜 집중하게 된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 그 누구도, 사건의 단서를 따라가며 종횡무진하거나 추론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흘러가고, 등장인물들은 이야기에 끌려다니다가 이야기가 적당히 매듭지어 던져주는 끝을 받아들이게 될 뿐이다. 등장인물들이 주도적이지 않다. 그런 느낌이다.

스릴러 소설인데 스릴러 작품 특유의 긴장감이나 속도감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말에서도 쾌감이나 놀라움을 느끼지 않았다. 미적지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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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자체는 나쁘지는 않았다. 집중력 있게 읽었고 금방 읽었다. 재미는 있었다. 하지만 (스릴러를 읽고 싶어서 고른 책이었는데) 스릴러로써는 별로였다. 그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