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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스럽다.
이 책만큼 좋은 책, 이 책보다 좋은 책은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책만큼 감탄스러운 책, 이 책보다 감탄스러운 책은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는 (아직)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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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물당 열 페이지 이하씩, 오십여 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지방(아마도 수도권)의 어느 종합병원을 배경의 중심으로 해서, 인물들은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서로에게 연결되어있다. 개연성 있게 이음매가 예쁘게 잘 엮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몇몇 인물이 더 많이 등장하거나 언급될지언정 더 비중이 크지는 않다.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한 말처럼, 주인공이 없는 이야기 혹은 오십여 명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각각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물리적인 한계(분량의 한계)로 인해 깊이는 덜하지만, 디테일이 뭉게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짧은 이야기라고 해도, 서로 다른 이야기들 간의 연결성이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라 해도, 이야기 하나하나의 완결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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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작가는 이 책을 쓸 때 어떻게 썼을까. 절로 그것을 상상하게 된다. 중심이 되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살을 붙이듯 인물을 한 명 한 명 늘려나갔을까. 아니면 여러 가지 소재들을 먼저 찾아서 늘여놓은 다음에 그것을 꿰맸을까.
그것뿐 아니라 다른 가정들도 해본다. 한 명의 주인공을 정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어떤 이야기가 되었을까. 등장인물을 반이나 삼 분의 일 정도로 줄였다면 어땠을까. 분량을 두세 배 늘렸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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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등장인물들에게 균등한 분량을 배분해서 치우침 없이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니, 특별히 집중하는 인물이나 사건은 없다. 따라서 이야기는 얕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짜임새는 훌륭하고 치밀하지만 깊이 파고드는 타입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이 이 책의 단점이냐, 라고 물으면 그것은 아니다. 그냥 다른 종류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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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많은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읽다가 앞으로 돌아갈 때도 많다. 분명히 앞에서 나온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 인물들이 튀어나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여러 번 읽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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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회성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형식의 소설을 또 써봐야 이 작품과의 차별성을 만들기 어려울 것이고, 그것을 차치하고 비슷한 작품을 누군가 또 쓰거나 혹은 비슷한 작품이 이미 존재한다고 해도 굳이 읽어볼 생각이 들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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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자체보다는 많은 이야기들을 하나로 엮어낸 그 구성, 설계, 기획의 훌륭함이 눈에 띄는 이야기다.
누구나 부담 없이 몰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