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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조선에게 명을 버리고 청을 황제로 받들라고 말했다. 조선은 오랑캐에게 절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청은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범했고 조선의 왕과 신하들은 남한산성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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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조정은 남한산성에 틀어박혔다. 수성하기는 좋지만, (포위당하였을 때) 반격하기는 좋지 않은 성이었다. 그들은 성안에 앉아서 밖이 아닌 안을 향해 싸웠다. 청의 십만이 넘는 대군이 성을 포위했지만 그들의 적은 애초에 청이 아니었다. 그들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한쪽과 화친을 해야 한다는 한쪽으로 나뉘어 말로 싸웠다. 성 밖은 청의 병사들의 말馬들이 일으키는 먼지로 자욱했고, 성안은 대신들의 말言들이 일으키는 먼지로 자욱했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끝까지 싸우기를 주장했다. 그는 어떻게 살아남느냐 보다 어떻게 죽느냐를 더 중하게 여겼다. 이조판서 최명길은 화친하기를 주장했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중하다고 생각했다. 영의정 김류는 어느 쪽의 의견도 따르지 않고 반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시간을 견디어 내고자 했다. 왕은 범람하는 말들 앞에서 무참하였다.

최명길의 목소리는 더욱 가라앉았다. 최명길은 천천히 말했다.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갇힌 성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
김상헌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들었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여들었다.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p.160
김상헌이 말했다.
"전하, 명길은 전하를 앞세우고 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자이옵니다. 죽음에도 아름다운 자리가 있을진대, 하필 적의 아가리 속이겠나이까?"
최명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전하, 살기 위해서는 가지 못할 길이 없고, 적의 아가리 속에도 삶의 길은 있을 것이옵니다. 적이 성을 깨뜨리기 전에 성단을 내려주소서."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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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신료들은 충과 예를 주장하며, 오랑캐와 화친할 수 없으니 끝까지 싸우고 버티어 항전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올곧을지언정 현실성이 없었고 가벼웠다.

반드시 죽을 무기를 쥔 군사들은 반드시 죽을 싸움에 나아가 적의 말발굽 아래서 죽고, 신하는 임금의 앞을 막아선 채 죽어서 그 충절을 후세에 전하리라는 말은 우뚝하였으나 적들은 이미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그 말의 크기와 높이는 보이지 않았다. p.23

십만이 넘는 대군에 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민가의 어린아이들조차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군병들은 화친을 주장하는 이(최명길)의 목을 치거나, 항전을 주장하는 사대부들이 자신들을 이끌어 싸워달라고 말하며, 싸우자는 사대부들을 조롱했다. 백성들이든 군병들이든, 그들도 결국에는 왕이 제 발로 성 밖으로 나가던가 청의 대군이 성벽을 넘어 들어오거나 둘 중의 하나로 결말이 날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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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소설은 보통 말이 많지 않다. 문장들이 길게 이어지고, 말들은 대체로 문단 속에 문장으로써 존재한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담백한 문장들과 더불어 작품의 분위기들은 대체로 고요하거나 적막하거나 조용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말이 주제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화, 왕과 신료들 간의 대화, 조선과 청의 대화. 다양한 측면에서의 말들을 풀어내면서 입체적으로 진행된다. 말들이 작품을 이끈다. 따라서 김훈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말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말들은 군말이 없이 간결하고 명료하므로, 새하얀 남한산성의 겨울 풍경과 더불어 작품의 분위기는 들뜨지 않는다.

소설이기에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으며 창작이 가미될 수밖에 없음에도, 문장들은 디테일이 살아있고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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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왕은 화친하기로, 항복하기로 한다.

목숨으로 충절을 다 바칠 것 같았던 신료들은 그 와중에도 최명길에게 책임을 묻거나 항전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었다.

그들은 말만 앞설 뿐 말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청이 화친의 대가로 끝까지 싸우기를 주장한 사람의 목을 원할 때 기꺼이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을 바친 사람은, 끝까지 싸우자고 말하기는커녕 어전에 나온 적조차 없는 당하堂下의 두 신하였다 (김상헌조차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조선은 살아남았다. 왕은 살아남았다. 최명길도 살아남았다. 김상헌도 살아남았다. 호란이 끝나자 도망쳤던 백성들은 남한산성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청의 군대가 남긴 상처는 컸지만 그럼에도 결국 그들은 물러갔고 봄은 찾아왔다.

길은 아득해서 조령관 너머는 보이지 않았다. 물 위에 어른거리는 길들을 바라보면서 김상헌은 성안에서 목을 매달았을 때 죽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김상헌은 남은 날들이 아까웠다. p.392

말이나 뜻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삶이고, 길이란 것은 말로써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니라 걸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최명길은 그것을 일관되게 주장했고 왕은 그것을 받아들였으며 김상헌 또한 그것이 옳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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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하고 싶은 좋은 문장들은 많았지만 지나친 인용은 오히려 감상문을 너저분하게 만들 거라는 생각에 최대한 삼갔다.

추천할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