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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단편 소설집은 수록한 작품 중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의 제목을 소설집의 제목으로 삼는다. 특히 한 작가의 작품으로만 이루어진 소설집의 경우 그 규칙을 어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적어도 내가 읽은 적 있는 (한 작가의 작품으로만 이루어진) 소설집들은 모두 이 불문율을 따랐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목차를 아무리 살펴봐도 이 소설집에는 '비행운'이라는 작품이 실려 있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은 제목을 비행운으로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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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이 책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단순히 '비행기가 남기고 간 구름'을 뜻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 (책을 읽어보기 전에) 지인에게 듣고서야, 그리고 책의 뒷표지를 보고서야 '비행기가 남기고 간 구름'과 '불운'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여덟 개의 작품은, 단 하나도 유쾌한 작품이 없다.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갈등이나 위기를 속도감 있게 최고조로 올려놓고는,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하는 일 없이 끝낸다.

그러한 이야기들의 공통점을, 작가 혹은 편집자가 비행운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덟 작품의 주인공들의 불행은 스스로 자초한 자업자득의, 혹은 인과응보의 불행이 아니다. 물론 인격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완벽하거나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벌을 받아야 할 정도로 악의에 찬 인물들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일상적으로 흔히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인물들, 그들이 겪는 절망, 분노, 슬픔은 그저 운이 없기 때문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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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런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에 집중하는 책. 부정적인 상황과 감정을 파고드는 책. 그 감정들을 실감 나게 표현하는 책. 그런 책들은 잘 감당하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삼사십 페이지의 단편을 한 번에 읽은 적이 없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읽기를 멈추고 숨을 골랐는지 모른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읽게 되면 항상 감탄하게 된다. 어찌 이렇게 사람의 감정을 생생하게 잘 표현할 수 있는지. 마치 내가 겪고 있는 일인 양 감정 이입이 되는지. 짧은 이야기들 속에 어떻게 이런 가파른 비탈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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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을 두 번 읽는다. 다 읽고 난 다음에 바로, 다른 책을 읽지 않고 연속으로 두 번 읽는다. 책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반, 감상문을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반. 두 번 읽지 않은 책들도 몇 있는데 그런 책들은 (개인적인 기준으로) 너무 형편없는 책이거나, 스포일러를 너무 심하게 당해 처음 읽을 때 이미 두 번 읽은 느낌이 드는 책이거나, 심리적으로 읽기 힘든 책들이다.

이 책은 심리적으로 읽기 힘든 책이다. 그래서 연속으로 다시 읽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감상문은 쓰고 싶었다. 감상을 남겨두고 싶었다. 두 번 읽으면 써야지 하고 미루다가는 같은 이유로 미룬 책들처럼 끝도 없이 미루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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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편하게 읽은 편은 '서른'과 '물속 골리앗'. '서른'은 편지 형식이기 때문에 (내용은 전혀 담담하지 않지만) 비교적 담담하게 다가왔다. '물속 골리앗' 같은 경우는 비교적 비현실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덜 와닿았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그곳에 밤 여름의 노래', '하루의 축', '큐티클', '호텔 니약 따'는 힘들게 읽었다. 그들이 겪는 일들은 나 혹은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겪은 적 있는 일이거나, 언젠가 겪을 수도 있는 일들이었다. 전혀 다른 사람들의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제가끔 현실감 있게 잘 표현했다. 산뜻한 혹은 평이한 시작을 자연스럽게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전개와 표현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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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었다. 또 한 번 읽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그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스트레스가 쌓일 수도 있는 책이기 때문에, 쉽게 추천할 수는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