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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의 남편 금주 씨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일하던 공장에서 기계에 몸이 끼어서,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상반신이 훼손되었다. 아홉 살 열 살 두 딸과 아내 애자를 남겨두고 횡사했다.
애자는 그를 사랑했다. 전심전력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그가 죽었을 때, 모든 마음을 다 바쳐 사랑했던 그가 죽었을 때, 그녀는 빈껍데기가 되었다. 끔찍한 사고로 인해 끔찍한 형태로 돌아온 남편을 보며, 그녀는 살아갈 의미와 의지를 잃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덧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세상에 남아있을 뿐, 살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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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와 나나는 애자와 금주 씨의 딸이다.
빈껍데기가 되어버린 어머니 애자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고, 저주와 다를 바 없는 애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애자는 온갖 말을 통해 삶의 부질없음을 덧없음을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그 무엇도 소중할 게 없고 중요할 게 없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너희의 아버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특별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것은 아니란다.
그게 인생의 본질이란다.
허망하고.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단다. p.12
좋은 것들이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말 그대로 구하기 때문이란다.
세상에 좋은 것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감탄하고 칭송하는 거란다.
별로 없어, 좋은 건.
그러니까 그런 걸 기대하고 살아서는 안되는 거야.
기대하고 기대할수록 실망이 늘어나고, 고통스러워질 뿐인 거야. p.57
가엾게도.
애쓰지마.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기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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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그녀들은 옆집의 같은 또래 나기와 나기의 어머니의 보살핌 덕분에, 애자의 생각과 말들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된 소라와 나나는 애자처럼 되지 않고자 했다. 그들은 그녀가 가엾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를 혐오했다. 그녀 같은 존재는 세상에 없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소라는 미래에도 아이를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되지 않으면 애자처럼 될 가능성이 없으니까, 그녀는 애자가 될 상황에서 완전히 회피하고자 했다. 도망치고자 했다.
엄마가 되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회로가 그렇게 꼬여 있다. 생각이 아니고 심정의 영역에서.
그러므로 애초에 아기는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아기를 낳지 않는다면 엄마는 없지. 엄마가 없다면 애자도 없어. 더는 없어. 애자는 없는 게 좋다. 애자는 가엾지. 사랑스러울 정도로 가엾지만, 그래도 없는 게 좋아. 없는 세상이 좋아. p.45
무섭지 않아? 하고 소라가 묻습니다. 아이를 낳고 부모로서 영향을 주고 그 아이가 뭔가로 자라가는 것을 남은 평생 지켜봐야 한가는 거...... 계속 걱정해야 하는 뭔가를 만들어버린다는 거..... 무섭지 않아? 하고 말입니다. p.122
나나는 소라와 달랐다. 그녀는 (의도치는 않았지만) 임신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외면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녀는 어렸을 적 나기가 해주었던 말을 되새기며, 연인인 모세 씨의 가족을 보면서, 중요한 것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애자처럼 되지 않으려면 중요한 것은, 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고, 남의 고통을 생각할 줄 아는 것이었다.
아파?
오라버니는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기억해둬,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야. p.130
가족은 남이 아닌가요?
남이 아니죠.
(중략) 남이 아니라니 모세씨는 진심인 걸까. 남이 아니라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다 알고 있으니까 더 알 필요도 궁금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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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대단히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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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어를 한 문장 혹은 한 문단 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강조하는 문장들이 재미있다. 문장들에서 시적인 운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보다도 싫어하는 것보다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잔뜩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결국은 비등한 에너지의 소요. 이것저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좋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p.87
안되겠다.
하고 생각합니다. 더 이야기하면 울지도 모르고 나나가 울기 시작하면 소라가 운다. 소라가 울면 나나가 울고 나나가 울어서 소라가 울고 소라가 울어서 나나가 우니까 소라가 운다. 이것은 그냥 아는 것. 한번 작동하면 내내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메커니즘처럼 멈추지 않을 거다.p.117
남들이 뭐라고 말하든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생각을 덜 했으므로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중략) 그래서 더 생각하고 싶은데, 그런데 생각을 더 하다보면 이렇게 더 생각하는 것이 좋은가, 정말 좋은가, 그런 생각까지 하게 돼.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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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인물의 내면을 가감 없이 정제함 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날것으로 쓴 것 같은 문장들로 가득한가 싶다가도, 이야기 전체를 보면 대단히 잘 정리되고 계획된 문장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버릴만한 문장 없이,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모나거나 어색한 것이 없다. 나기의 이야기를 소라와 나나의 이야기에 어떻게 맞물려 넣는 게 가장 좋을까에 대한 고민은 아직 남아있지만, 그 고민이 이 이야기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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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와 나나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나기의 이야기도 그 자체만으로 좋았다. 나기의 이야기는 애절하다. 소라 나나 나기 셋의 각각의 일인칭 시점의 문장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더더욱 이야기가 잘 산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말아줘.p.187
너를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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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부정적인 말로 세상을 부정하는 애자에게, 그녀의 딸들 소라와 나나가 삶으로써 반박하는 이야기이다.
삶이 덧없을지라도, 하찮을지라도, 무의미할지라도, 그것은 소중하다는 이야기이다.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p.227
재미있는 문장들로 쓰인 짜임새 있는 이야기였다. 재밌게 읽었다. 누구에게라도 추천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