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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신을 찾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전에 읽었던 '데미안'과 비슷하다.

'데미안'을 인상 깊게,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하자 지인이 추천해 준 책이다. "'데미안'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같은 작가의 '싯다르타'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정확했다.

책을 펴기 전에는, 실존 인물 싯다르타의 삶에 살을 붙인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싯다르타로부터 모티브를 따왔을 뿐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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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주인공 싯다르타의 일생을 담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깨달음을 얻기까지,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는 타인의 말 혹은 가르침, 경전의 구절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좋은 것 훌륭한 것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지만, 어떤 생각이나 진리가 말로써 혹은 글로써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그것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을 믿었다. 그는 자신의 방탕한 삶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었고, 강물을 바라보고 들음으로써 깨달음을 얻었고, 현자와 스승의 손짓 몸짓 행동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었다.

말이란 신비로운 참뜻을 훼손해 버리는 법일세. 무슨 일이든 일단 말로 표현하게 되면 그 즉시 본래의 참뜻이 언제나 약간 달라져 버리게 되고, 약간 불순물이 섞여 변조되어 버리고, 약간 어리석게 되어버린다는 이야기야. p.211

그는 시간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존재들을 보려고 했다. 어떤 사물이 과거에는 그랬으며 현재에는 이러며 미래에는 저럴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모든 상태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와 다른 것으로 보지 않고 현재와 동일한 것으로 봄으로써, 시간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시간의 개념에서 벗어나면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젠가는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오래 전부터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p.210
일체의 번뇌의 근원이 시간이 아니고 대체 무어란 말인가. (중략) 그렇다면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극복하는 즉시, 이 세상의 모든 힘겨운 일과 적대감이 제거되어 극복되는 것이 아닌가?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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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작가의 같은 책 '데미안'과 비슷하다. 진정한 자기를 찾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주인공에게 위대한 스승이자 친구가 있다는 점에서,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기만의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데미안'은 자기를 찾는 것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싯다르타'는 자기를 찾으면서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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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이지만, 동시에 철학서로 볼 수도 있다. 모든 이야기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사상 혹은 진리를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한 예시로 볼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주인공 싯다르타와 그의 친구 고빈다의 대화를 통해 책 전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정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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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모든 것은 현재이며 영원하다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는 되고 좋은 말이라는 것도 이해되지만, 받아들이기는 솔직히 어렵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진정으로 배우고 깨달은 것은, 말이나 글은 생각의 참뜻은 온전히 담기는 힘들다는 것, 그러하니 스스로 보고 듣고 경험하여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보게, 고빈다, 내가 얻은 생각들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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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마음에 든다. 다만 이런 책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추천하기는 조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