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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정신없다. 시간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사건 별로도 인물 별로도 아니다. 정신없는 전개에 추상적인 문장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문체의 번역이 한데 섞여서 나를 지치게 했다. 좋았다, 나쁘지 않았다 따위의 감상은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읽었다.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읽을 때는 일종의 몽롱함을 느꼈다. 보통 같은 책을 두 번째로 읽을 때는 (내 경우에는) 집중도가 더 높아지는데 이 책은 전혀 아니었다.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2007년에 출간된 책이니 그리 오래된 책은 아닌 것 같은데도 문장들이 어색하고 생경했다. '데미안'을 읽었을 때처럼 다른 버전의 번역도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의 다른 번역판은 모두 절판된 상태였다. 굳이 중고를 찾을 정도의 의욕이 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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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연인'이지만, 이야기는 두 남녀의 사랑만큼이나 여자의 가족사 및 삶에 대해서도 많이 말한다. 남자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와 여자의 삶을 마구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고 이야기도 화자가 자신의 과거를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듯이 진행되기는 하지만, 굳이 이런 식의 정신 없는 전개를 선택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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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까지는 아니다. 여자의 가족사도, 여자와 남자의 연애도, 이야기 자체만 두고 본다면 볼만 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정신없는 전개를 더욱 정신없게 만드는 추상적인 문장들과 번역이다.
추천하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