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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와 쇼코는 중학생 시절 처음 만났다. 쇼코의 학교에서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영어 잘하는 학생들을 한국 학교로 견학 보내면서 였다. 쇼코는 소유의 집에서 일주일을 머무르며 같이 지냈다.
쇼코가 있는 동안 소유의 집에는 활기가 돌았다. 웃는 법 없이 티비 앞에서 자리만 지키던 할아버지는 새로운 친구라도 생긴 것처럼 쇼코와 일본어로 이야기를 나눴고, 감정표현이 서툰 엄마도 환한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다.
쇼코는 자신의 가족과 자신이 사는 동네를 떠나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꼭 떠나겠다고 이야기하며, 소유에게도 세상은 넓으니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했다. 소유는 동네를 벗어난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둘의 삶은 반대가 되었다. 쇼코는 동네를 떠날 수 없게 되었고 언젠가 놀러 가겠다는 약속도 지키기 힘들게 되었다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내오지 않았다. 소유는 대학교도 서울로 가게 되고, 유학과 여행으로 해외를 돌아다니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뉴욕에서, 중학생 시절 쇼코와 같이 견학을 왔던 일본 아이를 만나게 되고 쇼코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녀는 쇼코를 만나러 갈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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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꿈을 좇지만 결국은 좌절하고 포기하게 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쯤에서야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소유. 가족을 증오하고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사실은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쇼코. 서로를 좋아도 하고 싫어도 했다가 결국에는 서로에게서 위로를 찾는 소유와 쇼코. 그런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평생 좋은 소리 한 번 하는 법 없이 무뚝뚝하기만 했는데 그게 고작 부끄러움 때문이었다니. 죽음에 이르러서야 겨우 부끄러움을 죽여가며 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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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이십 대 초중반은 나의 그때와 비슷하다. 꿈이라고 할만한 목표가 있는 것. 꿈이 없는 사람들을 비웃는 것. 돈과 안정을 좇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 자신은 고귀하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그 꿈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
그녀의 생각은 그 시절의 나를 다짜고짜 불러냈다. 나는 공감과 안쓰러움을 같이 느꼈다.
나는 그애들이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단지 돈과 안정만을 좇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내게 중요한 건 오로지 의미였다. 나는 나의 꿈을 따라가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위했다.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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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때문이었는지 문장들 때문이었는지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마음에 드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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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는 동명의 소설집의 표제작이다. 소설집에는 '쇼코의 미소' 말고도 작가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쓴 일곱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화자들이 ('비밀'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성격의 인물이라고 느꼈다. 이야기를 적당히 끼워 맞추면 한 인물의 이야기로 만들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때문인지 작품들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장점인지 단점인지도 알 수 없다. 단지 나는 좀 더 다양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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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정돈이 덜 되었다고도 느꼈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 순애가 해옥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말, "아무도 우리를 죽일 수 없어"라는 말이 (말 자체야 좋은 말이지만) 어느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자와 영주'에서 인종차별적 말을 하는 마을 주민들에 대한 생각이 조금 (분량이) 과하게 느껴졌다. '미카엘라'에서 주인공이 엄마인 줄 착각한 사람이 대뜸 "우리 딸도 거기에 있었다"고 말한 것은,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야 알겠지만 조금 생뚱맞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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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들도 다 좋았지만, '쇼코의 미소'와 '신짜오,신짜오'가 제일 마음에 든다.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우리 곁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건 생에 대한 무책임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방임도 아니었다는 것을.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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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좋다, 마음에 든다, 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검색해보니 이 소설집이 이 작가의 첫 책이라고 한다. 다음 책을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