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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웬만하면 해설이나 타인의 감상을 읽지 않는다. 나는 온전히 나의 독서를 하고 싶다. 타인의 생각이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이나 감정만으로 책을 읽고 싶다.
감상문을 쓰고 나면, 그제서야 몇몇 작품들에 관해서는 정보를 찾아본다. 작가의 생애라던가, 작가의 다른 작품이라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해설은 읽지 않는다. 이때쯤 되면 타당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단순한 고집이다. 난 이미 이 책을 읽고 이해했어. 나는 해설을 읽을 필요 따위 없다고! 그런 건방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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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도 물론 같은 마음이었다. 책 뒤표지에 있는 간단한 소개 문구에서조차도 애써 눈을 돌리며, 책 전체 분량의 반이 조금 안 되는 해설의 존재도 무시했다. 일단 읽었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아 한 번 더 읽었다. 그럼에도 어려웠다.
주인공의 성격은 마치 주관이 없는 듯, 흘러가는 대로 사는 듯 보였고, 도대체 왜 총을 쏘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고, 재판에서도 그가 왜 그렇게 답답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후반부의 후반부에서, 그가 사제를 향해 토해내는 말들을 통해서,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안개가 낀 듯 흐릿했다. 뭔가 읽다 만 것처럼, 혹은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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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문득 책의 후반부에 눈이 들어왔다. 후반부에는 해설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각색 제의에 대한 작가의 답장(편지), 작가가 쓴 미국판 서문도 있었다. 이건 해설이 아니잖아? 좀 읽어봐도 되겠는걸? 같은 불필요하고 이상한 핑계를 대며 그 부분을 읽었다. 그리고 미국판 서문에서, 아래와 같은 구절을 읽었다.
즉 그는 거짓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중략)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각자 뛰어놀던 문장과 구절들이, 그제서야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춰 서는 것을 느꼈다. 주인공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무덤덤할 수 있었던 것, 그가 애인에게 사랑하진 않는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 그가 주변으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는 (소위 말하는 날건달 같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 재판에서도 죄를 뉘우치는 기색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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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작위적인 인물이다. 실제로 이런 인물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1부를 읽을 때의 나를 괴롭혔다. 그 심중을 이해할 수 없어서, 나는 그가 실존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대한 상징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며 겨우 읽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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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같잖은 재판을 통해 결정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상고도 포기했다. 어차피 거짓을 이야기할 생각이 없는 그로서는 상고를 해봤자 의미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형에 관해 죽음에 관해 두려워하면서도 절망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긍정했으며 타인에게 자신을 내맡기지도 떠넘기지도 않았다.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 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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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뒤표지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영웅이기를 거부하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 뫼르소
나는 이 문구가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순교자가 아니다. 그는 진실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저 거짓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후회하지 않고, 자신을 옳다고 자신의 삶과 운명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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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삶이 숭고하다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처럼 살 수 있는가 라고 물으면 긍정할 수 없다. 그처럼 살고 싶은가 라고 물으면 긍정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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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사가 조금 이상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따라서, 나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 스스로의 온전한 감상'을 부정할 마음은 없지만, 해설이나 타인의 감상을 그저 방해로만 취급하는 것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요한 것은 타인의 생각에 휩쓸리지 않는 것.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할 것. 그것뿐이다.
감상문을 쓰고 책 후반부의 해설도 다 읽어볼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의 감상도 좀 찾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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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끝끝내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도대체 주인공은, 뫼르소는 왜 총을 쏘았는가. 도대체 뫼르소는 왜 한 발을 쏜 뒤, 잠시 후에 네 발을 더 쏘았을까. 그것은 단지 주인공을 재판으로 밀어 넣기 위한 작위적인 설정이었던 걸까? 아니면 역시 내가 모르는 이유가 숨겨져 있는 것인가? 그 이유를 해설을 읽으면 알 수 있을까? 그 해설을 납득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